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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여행Lifestyle/여행 2020. 7. 26. 19:38
남편이 낚시에 미쳤다.
그래서 태교여행도 마라도로 갔다.
나는 힐링을 하러 가기로 했는데
막상 와보니
왜 여기가 낚시천국인줄 알겠다.우선, 배를 타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밤이든, 새벽 언제든, 낮이든
그냥 내가 걸어서 나가면 된다.우린 마라도에서만 일주일을 머물렀다.
마라도에 들어가기 전날과
나온 다음날
신라호텔에서 잤는데
모든 일에 처음과 끝이 좋으면
화를 못낸다.지금은 새 펜션도 지어졌다고 하는데
내가 3년 전에 갔을 때는
숙소가 몇 개 없었다.
마라도 섬 자체가 작으니 뻔하다.우리는 마라도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도착한 날 쨍한 날씨에
골프카를 타고 마중을 나온 실장님,
시원한 바다냄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오길 잘했네.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 땐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말그대로 게스트하우스,
허리가 뻐근해지는
그런 나무 침대 두개가 덜렁 있었고
덜렁 거리는 방충망이 있는 창문이 보였다.
게다가 공용 화장실이라니.
이런덴 대학교 저학년 때 이미 다 뗐는데...?
심지어 나 지금 임신중인데...?
약간 화가 나려고 했는데
대문을 나가기도 전에
정말 새새새파란 바다가 보였다.뭐지?
화가 나는데
화를 낼 수 없는 마음이다.작은 섬을 한바퀴 돌고 나니
꼭 시골집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아니다, 뚝 떨어져있다는 낯설고도
조금은 묵직한 마음도 든다.처음엔 좀 어색해서
골방에 문 닫고 누워 있었는데
조금 지나니
사장님, 직원들은 우릴 신경도 안 쓴다.
문 열어놔도 아무도 없다.창 밖으로 사각사각 소리만 들린다.
남편이 밑밥 개는 소리다.시도때도 없이 나간다.
자기야, 나 남대문 (낚시포인트) 갔다올게.
자기야, 아무래도 할망당이 좋은 거 같애.
다녀올게.어쩌구저쩌구
잡지도 못하는 뱅에돔얘기를
잔뜩 늘어 놓는데
이제 화도 안난다.얼마나 좋으면
성과가 없어도
몸이 저렇게 힘들어도
돈을 이렇게 들여서
나까지 이렇게 설득해서
낚시를 할까?
그 열정이 정말로 존경스럽다.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게
부럽다.
진짜 취미는
내가 기쁠 때도 좋지만
힘들 때도 좋은 것 같다.
바로 집중할 수 있는 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
이런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남편이 낚시대를 두르고 걸어가면
나는 책을 가지고 나와
벤치에 앉아서 읽었다.휴대폰 라디오 어플로 노래를 틀어놓고
읽다보면
안에서 소리친다.
식사하세엿!마라도 삼시세끼다.
딱딱 맞는 시간에
김이 모락나는 백반을 내준다.
생선구이가 꼭 있다.빈둥빈둥 놀다가
누가 차려주는 밥 잘 먹고
또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마라도 한바퀴 돌고
책 읽고...마라도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도 가졌다.우리가 힐링, 쉼, 휴가를 위해서
어디론가 계속 밖으로 나가고
아니면 집에 처박혀 있곤 하는데이렇게 단절된 느낌에
고요한 느낌에
차분한 느낌 속에서
생각을 하고 멈췄던 적은
처음이었다.사업이나 취직에 실패하고
오는 사람도 있다던데
그럴만하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남편이 저 멀리서
낚시장비 가득 매고 웃으며 다가오고
나는 책을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드뷔시의 달빛이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애잔하고 행복해서
벅차 올랐다.배나온 내게
불편한 여행이었지만
최고의 태교여행이었다.